드디어 찾아온 영상의 기온. 그동안 미뤄놓았던 빨래를 해치운 밤이었다. 퇴근한 저녁에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 일도 당연하지 않음을 새삼 느꼈다. 세상의 일 중 나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은 많이 없구나. 방 한구석에 쌓여있던 묵은 덩어리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니 집이 넓어진 느낌이다. 요 몇 주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괜히 집이 좁아 보이고, 다른 집으로...
요즘의 출장길이 조금 덜 힘든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딘가 이동하는 것도 많은 고민이 뒤따르는 이때, 합법적이고 불가피한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지낸다는 것도 어찌 보면 행운이다. 여러 이유로 동료들과 함께 묵었던 에어비앤비를 뒤로하고 그냥저냥 저렴한 숙박업소에 짐을 풀었다. 괜한 불안과 찜찜함으로 그동안 '숙박업소보단 에어비앤비가 ...
내 방엔 시계가 없다. 시계야 뭐, 온갖 전자기기에 붙어있는 세상인걸. 하지만 버튼을 누르지 않고 시간을 확인하는 방법은 몇 없다. 전자레인지에 시간이 표시되긴 하지만, 얼마만큼 잘못 설정된 지도 가늠이 안될 만큼 엉뚱한 시간을 표시하고 있어서 소용이 없다. 아침에 깨어나 몽롱한 채로 알람을 끌 때에야 정확한 시계를 본다. 대충 나갈 채비를 할 때 얼마나 ...
다시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는 것은 다시 조금은 건강해졌다는 뜻일까. 뭐 좀 유난 떠는 것 같긴 하지만. 사실 나는 요즘 이시간이 내 삶에서 육체적으로 제일 (까진 아니더라도) 건강한 시기인 것 같다ㅡ 는 생각을 했었다. 체력도 많이 늘었고, 잠을 조금 줄여도 덜 피곤하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새벽에 일어나 구토를 하게 된 것은 참 무어라 설명...
편식이 심한 편이다. 먹을 것은 덜 한데, 책과 영화는 무척 심하다. 그래서 편식을 줄여보고자 트레바리도 하고, 이것 저것 건들지도 않는 책들을 많이 사들이는데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하긴, 많은 세월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쉽게 고쳐지진 않겠지. 책이나 영화나 자극적인 이야기는 별로다. 피가 낭자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읽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단어들이 눈에 들...
친구를 사귀는 것은 나에게 늘 어려운 일이었다. 어린 나는 낯도 많이 가리고 소심했었다.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따뜻한 이들 덕분에 그럭저럭 혼자가 아닌 삶을 살았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나와 네가 친구라고 서로 믿고 있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항상 내 마음의 깊이와 너의 마음...
월요일 저녁 회식이라니.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어쩜 한 주의 시작부터 회식을 할 수가 있는지, 투덜대보지만 오늘부로 같이 일을 시작한 직원의 환영회라는 이름이 붙으니 더 무어란 말을 붙일 수 없다. 그럼 그럼. 앞으로 많은 고생을 할텐데 환영이라도 진하게 해주어야지. 막내가 환영회를 환영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오랜만에 소고기를 먹었다. 당연히 돼지고...
형용사를 많이 잊었다. 뭐든 '귀엽다'로 퉁 치고 있다. 그게 멋있든, 근사하든, 예쁘고 아름답던. 무의식적으로 귀여워 라는 말이 제일 먼저 튀어나온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할 정도로. 아니, 이게 귀엽다구요?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좋다는 거였어요. 좋네요. '귀엽다' 다음으로 많이 쓰는 말이 '좋다' 다. 직업병이라고 우겨본다. 좋다, 좋아요 한 ...
누가 나에게 딱 3일의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주저하지 않고 한적한 어느 산동네로 들어갈 것이다. 여느 때처럼 짐가방은 무거울 것이다. 쓰지도 않을 물건들과 입지도 않을 옷을 넣고 뒤룩뒤룩 살찐 가방을 힘겹게 끌고 가겠지. 이놈의 '만약'과 '혹시'를 떼어놓기 쉽지 않다. 그 가방엔 책도 잔뜩 들어가 있을 것이다. 올해 읽기로 하여 사두고 빛을 보지 못한...
하루 종일 고마운 연락을 받았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준 친구도 있었다. 이것이 카톡의 힘인가. 대단하지. 커피 선물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간편하고 좋으니까. 누구는 여자랑 말고 꼭 남자랑 먹으라 했다. 그러면 교환권 연장을 세 번정도 해야할 것이라 얘기했더니 그렇게 해서라도 먹으란다. 참내. 남말 할 처지가 ...
한 봉지에 오천 원. 입간판엔 3~4개라고 써있지만 내 몫은 꼴랑 세 개뿐인 군고구마. 마음속으로 네 개를 달라고 계속 말을 걸어보았지만, 사장님 귀에는 들리지 않았나 보다. 마감 시간도 곧 다가올 테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마지막 고구마 손님일 것 같은데. 야속할 만큼 무심히 내미는 종이봉투를 받아든다. 그리 뜨겁지 않은 봉투에선 달큰한 냄새가 풍...
나는 내 속눈썹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좋은 인상이 아니라 그랬나. 어릴 때 속눈썹이 눈을 찔러 시력이 많이 나빠진 후로 속눈썹은 알게모르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 땐 안경을 낀 친구들이 멋져보여서 일부러 TV앞에 가까이 앉아있곤 했다는 사실은 뒤로 한 채, 지금의 불편함을 모두 속눈썹에다 돌리는 것이다. 불쌍한 녀석. 눈 위에 사뿐히 앉은 작은 터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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